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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매너연구소24.08.28
일본 후세 '마을 전체호텔'...프런트는 기모노 가게, 복도는 마을길, 객실은 과자점
지난달 찾은 일본 오사카 동쪽 작은 마을 후세(布施)의 상점 골목. 아침 일찍부터 붕어빵집, 고로케집, 떡집 등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때 줄줄이 가게 문을 내려 샷타도리(シャッタ-通り·폐점 가게가 많은 거리)라던 이 동네에 대반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다 할 관광자원은 커녕 번듯한 숙소도 없는, 고령자나 대학생 1인 가구 위주의 쇠락해가던 주택가가 거리마다 관광객이 흔해진 핫한 여행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WEEKLY BIZ는 이 같은 변화의 변곡점이 된 ‘마을 전체 호텔’ 현장을 취재했다. 마을 전체 호텔이란 기존에 있던 상점·식당·카페 등 마을 시설을 하나로 묶어 호텔 같은 편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후세에선 마을의 골칫덩이인 빈 점포들을 새 객실로 바꾸고, 숙박객들이 동네 체험까지 하도록 아이디어를 내면서 관광객이 늘고, 지역 전체가 살아나고 있다.
◇아침은 동네 다방, 샤워는 동네 목욕탕
마을 전체 호텔은 2018년 이곳에 ‘세카이 호텔’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 부동산 회사가 셔터를 내리고 방치됐던 빈 점포들과 집을 하나둘 매입,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일반적인 호텔이나 여관은 하나의 큰 건물 안에 모든 객실이 있지만, 이 마을 전체 호텔은 마을의 빈 점포가 프런트나 객실이 되고, 호텔 복도 대신 마을길을 걷는 게 특징이다. 객실 내부는 예전의 낡은 점포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인테리어로 탈바꿈했지만, 가게들의 옛 간판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타가와 마리 세카이 호텔 매니저는 “마을의 추억을 간직하고 ‘레트로’풍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옛 간판은 남겨 뒀다”면서 “프런트로 쓰이는 곳은 예전엔 여성용 기모노 가게였고, 숙소는 옛 과자점, 물리치료원, 다방 등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했다.
호텔 숙박객은 목에 파란색 명찰 목걸이를 걸고 돌아다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목걸이는 약 1.8㎞에 걸쳐 이어진 후세 상점가에서 ‘프리패스(자유이용권)’라고 불리는 일종의 할인권이다. 호텔과 제휴한 동네 음식점이 목걸이를 보고 숙박객에게 서비스와 할인을 제공한다. 동네 화과자집에 가면 생딸기와 키위가 든 생크림 ‘모치’를 무료로 받을 수 있고, 동네 야키토리야(닭구이집)에서 식사를 하면 생맥주를 서비스로 주는 식이다. 모든 가게가 다 무료 서비스를 주는 것은 아니다. 완전 무료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여덟곳이고, 나머지는 가게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덤이나 할인 혜택을 준다.
후세 마을에선 이 마을 사람들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는 패키지도 종일 제공된다. 우선 조식은 호텔 뷔페가 아닌 동네 낡은 ‘끽차점(일본식 다방)’에서 준다. 계단만 내려가면 식사가 차려져 있는 호텔보다야 불편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수다를 떠는 사랑방에서 특제 메뉴인 달걀 샌드위치를 먹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녁 식사는 동네 이자카야 또는 야키소바 집에서 먹고, 밤엔 60년째 운영 중인 동네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다. 숙박객은 진짜배기 ‘로컬’ 체험을 해볼 수 있어서 좋고, 동네 영세 상인들은 손님이 유입돼 상부상조하는 구조다.
◇5년 만에 숙박객 18배로
동네 상인들은 마을 전체 호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총 객실 수가 19개 규모로 작은데 지난해 한 해 총 5438명이 이곳에 묵었다. 2018년 갓 개점했을 때 숙박객이 310명이었는데, 5년 만에 18배 수준으로 오른 셈이다.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다르다. 1박 3000엔(약 2만8000원)짜리 캡슐호텔부터 6명 대가족이 묵을 수 있는 1박 4만엔(약 37만원) 상당의 독채 건물까지 다양하다. 숙박객 상당수는 20~30대 젊은 층이다. 기타가와 매니저는 “후세는 전성기였던 일본 쇼와 시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그 시절을 체험해보고 싶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후세는 한때 전철역을 중심으로 번화한 상점가가 있던 곳이지만, 1990년대쯤부터 가까운 난바에 상권을 빼앗기며 쇠락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레트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700여 곳 점포가 370여 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후세 상인들은 ‘더 이상 후세에는 희망이 없다’는 무기력이 팽배했다고 한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 이런 특이한 호텔을 만든 이유는 이 때문이다. 상인들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과거 번화한 시절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한편으로 마을을 살리기 위해 뭐든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강했다고 한다. 기타가와 매니저는 마을 전체 호텔 사업 대상지 물색차 주민 대상 설명회를 하던 시절 “다른 후보지 주민들은 ‘호텔 때문에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것 아니냐’고 반대했지만 이곳 주민들은 오히려 ‘뭐라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면서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일단 도전해보자는 주민들 의지 덕분에 호텔을 지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카이 호텔 측은 이후 다카오카 등 일본 내 다른 지역에 점포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성공적인 빈집 활용 모델 중 하나로 세카이 호텔을 선정했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에서는 후세처럼 낙후 상점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령화 현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준 데다 정부가 빈 점포에 보조금을 주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2022년 일본 중소기업청이 일본 전국의 100m 이상 상점가를 조사한 결과 평균 공실률은 13.59%에 달했다. 다카하시 이치오 긴키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케이에 “내국인에게 당연한 일상생활도 외국인에게는 관광자원 중 하나”라며 “세카이 호텔처럼 새로운 발상의 비즈니스 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