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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매너연구소24.07.25
‘응급 환자 외 일반 진료는 제한되거나 장시간 지연.’
2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보행 환자 전용 입구엔 이렇게 쓰인 입간판이 서 있었다. 주로 경증 환자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바로 옆 10평(약 33㎡) 남짓한 대기실엔 환자와 보호자 2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한 30대 여성은 대기실 의자에 누운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웃기도 했다. 그는 “사흘 전부터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왔다”고 말했다. 응급실 의사가 그에게 다가와 “CT(컴퓨터 단층 촬영)를 찍어보자”며 응급실 내부로 데리고 갔다. 한 60대 남성은 열흘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다. 독감과 코로나 검사를 마친 그를 의사가 응급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지난 2월 말 전공의 이탈 후 발길이 뜸했던 경증 환자들이 또다시 대형 병원 응급실로 밀려들고 있다. 최근 단순 두드러기·복통 등으로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가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보다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에선 “응급실이 또다시 누구나 갈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하기 직전인 지난 2월 1~5일 전국 400여 곳 응급실을 찾은 일평균 경증 환자 수는 8285명이었다. 경증 환자가 중증 환자(1469명)의 5.6배였다.
전공의가 동시 이탈한 2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응급실의 일평균 경증 환자는 6644명으로 이탈 전보다 20% 급감했다. 응급실을 24시간 지키던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경증 환자들 사이에서 “응급실에 가도 대기만 하고 치료는 못 받는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3월 말에는 경증 환자가 6000명대 초반을 기록하면서 중증 환자의 4.7배 수준으로 낮아지기도 했다. 의료 파행 사태를 계기로 경증 환자들의 불필요한 이용이 줄면서 응급실이 예상치 않게 ‘중환자 대응’이라는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갈 조짐까지 엿보였다. 그러나 4월 둘째 주부터 응급실 경증 환자는 다시 6000명대 후반으로 올라갔다. 이어 이달 초엔 전공의 이탈 후 처음으로 7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20~24일에는 응급실 경증 환자가 중증 환자의 5.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현재 응급실 상황은 전공의 이탈 전으로 거의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의료계 인사들은 “그동안 의사 일을 일부 하는 PA(진료 보조) 간호사 1만여 명이 합법화돼 현장에 적응했고,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 복귀율도 올라가면서 2월 말보다는 환자 수용 능력이 늘었다”며 “그 늘어난 자리가 경증 환자로 채워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응급실로 몰려드는 경증 환자 때문에 정작 응급·중환자 치료를 못 하거나 늦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응급 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서 숨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다시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 99명을 겪고 나서야 (위급한) 중환자 1명을 진료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쏠림을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성모병원의 한 교수는 “응급실로 온 경증 환자는 실손 보험 적용을 해주지 않거나, 본인 부담금을 대폭 올리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정부가 경증 환자들 눈치를 보느라 수십 년간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선 체계적으로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억제한다. 일본의 응급실은 1·2·3차 응급 센터로 나뉘어 있고 경증 환자는 3차 응급 센터는 이용할 수 없다. 프랑스도 응급실을 중환자를 담당하는 대형 병원 응급실(SAU), 특정 장기를 다루는 전문 병원 응급실(POSU), 경미한 환자 담당 병원 응급실(UPA)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