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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자기 위해 마시는 ‘커피’ 처음 개발한 한국인

서비스매너연구소22.11.28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취업준비를 할 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 무심한 듯 목에 걸친 사원증과 모닝커피는 직장인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니 커피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아무리 자도 풀리지 않는 아침의 피로감과 점심을 먹고 난 뒤 찾아오는 식곤증을 떨쳐주는 특수한 ‘목적’이 담긴 음료가 되는 것이다.


커피 마시는 것을 두고 ‘수혈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없던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느낌 때문이다. 커피 한 잔당 75㎎에서 많게는 300㎎까지 함유된 카페인 성분은 잠을 떨쳐내 주고 업무 집중력을 끌어올리거나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한다. 다만 가슴 두근거림과 수면 장애 등 부작용이 뒤따른다.


니드포밍 임승배 대표(45)는 직장인 때 커피를 달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새 ‘잠’이 큰 고민거리가 됐다. 유난히 잠들기 어려운 밤, 일과시간을 돌이켜보면 업무 미팅이 5~6건은 됐고 그때마다 한 잔씩 커피를 마시곤 했다. 잠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잠드는 데 도움을 주는 커피가 필요하다 느꼈다. 건강기능식품 ‘슬리빈’을 만든 이유다. 임 대표를 만나 커피에 인생을 건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업 직장인이 돼도 채워지지 않던 허전함


슬리빈(sleep-in)은 커피 형태의 건강기능식품이다. 카페인 함량을 99% 이상 제거한 커피에 수면 기능성 원료인 락티움을 첨가한 것이다. 락티움은 프랑스 인그리디아(Ingredia)사에서 개발한 독점 원료로,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수면 기능성을 인정한 원료 중 하나다. 디카페인 커피에 락티움을 함유해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일반 커피처럼 따뜻한 물이나 우유에 가루를 녹여 마시면 된다.


2003년 2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상제작회사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지금은 사전제작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시간을 정해두고 촬영하죠. 그 시절엔 ‘작품의 완성도’라는 명목으로 365일 중 200일 넘게 밤샘 작업을 했어요. 2년간 일하면서 쉬는 날이 열흘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월급은 100만원 정도였죠.”


열정만 믿고 버티기엔 막막했다. 전공과 관련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대신 돈 제일 많이 주는 회사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2005년 당시 연봉 4000만원 정도였던 대우캐피탈(현 아주캐피탈) 전략기획팀에 마케팅담당자로 입사했습니다.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보고서를 쓰는 일이 주 업무였어요.”


5년 뒤엔 LG상사로 이직해 언론홍보를 맡았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딴생각을 품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이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그 무렵, 영상제작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둘이서 영상제작회사를 차리자고요. 10년간 직장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 친구는 조연출에서 메인연출가까지 성장했더군요. 그렇게 사직서를 냈습니다.”


2016년 10월 친구의 이름 ‘봉회’에서 이름을 따 광고제작사 ‘본그레이’를 창업했다. 각 1억원씩 모아 총 2억원으로 사무실을 얻고 촬영 장비를 사들였다. 임 대표는 경영, 친구는 실무를 맡았다. “2개월 만에 첫 일감을 받았습니다. 하고 싶던 일이니만큼 잘 해내고 싶어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 10년 넘게 피웠던 담배도 끊었죠.”


2년 차에 접어드니 업계에 입소문이 나며 마케팅 전략을 세워달라는 문의가 왕왕 들어왔다. “지인을 통해 건강기능식품회사 ‘뉴메드’를 운영하는 김호철 교수님을 만났는데요. 원료를 제조사에 공급하는 B2B 형태에서 직접 제품을 제조하는 B2C로 전환하려는 단계였죠. 제품의 제형 등 콘셉트를 몇 가지 제안했더니 아예 자신의 회사에 입사하길 권하시더군요. 본그레이는 주주로만 남고, 뉴메드 마케팅팀장으로 입사했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을 파고들수록 나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커졌다. “마음에 불을 지핀 건 외할머니입니다. 건강에 안 좋은 걸 다 끊으시는데, 유독 커피믹스는 못 끊으시더군요.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시면서도 아침저녁마다 한 잔씩 드셨죠. 기존 커피와는 반대로 잠이 잘 오는 커피를 건강기능식품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1. 수면 기능성 원료 비교 분석


2019년 겨울 건강기능식품회사 니드포밍을 세웠다. 먼저 수면 기능성 원료를 찾아 나섰다. 식약처에서 인정하는 수면 기능성 원료는 감태, 미강주정추출물, 락티움 등 3가지다. “락티움은 그중 가장 최근에 발견된 원료입니다. 대부분 알약 형태로 판매하고 있고 건강기능식품으로 가공된 사례가 없었죠. 그만큼 활용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판단해 락티움을 택했습니다.”


GMP 인증을 받은 곳 중 가장 규모가 큰 ‘노바렉스’에 슬리빈 제조를 맡겼다. /임승배 대표

GMP 인증을 받은 곳 중 가장 규모가 큰 ‘노바렉스’에 슬리빈 제조를 맡겼다. /임승배 대표

락티움은 프랑스 유가공 전문기업 인그리디아(Ingredia)사에서 개발한 독점원료로, 정식명칭은 ‘알파에스1카제인’이다. 우유의 단백질을 아미노산 형태로 분해해 유당불내증을 겪는 사람도 불편함 없이 섭취할 수 있다. 수면 질 개선 기능을 인정받아 2004년 미국 FDA NDI(New Dietary Ingredients)에 등재됐다.


2. 원하는 원료를 구할 수 없다면 직접 가공하자


두 번째 주원료는 커피다. 카페인을 99% 이상 제거해 동결건조한 커피의 제조사를 찾아야 했다. “최소수량을 협의하는 단계에서 항상 좌절했습니다. 1만개 분량의 커피를 공급받고 싶었지만 커피 제조사에서 제시하는 최소수량은 10만개를 만들 정도의 양이었죠. 동결건조 가공이 되지 않은 커피를 공급받은 후 별도로 가공하기로 했습니다.”


제조 공장을 수소문했다. 제품의 안전·위생을 책임져야 하는 곳이니만큼 GMP(제조품질관리기준)인증을 받은 시설이어야 했다. “뉴메드를 다닐 때 눈여겨봤던 노바렉스를 찾았습니다. 마침 공장을 확장 이전한다기에 바로 마음을 굳혔죠. 안전하고 꼼꼼하게 생산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잠이 오도록 하는 기능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건 ‘맛’이다. “어릴 땐 ‘저렇게 쓴 커피를 왜 마시지’ 싶었는데 어느샌가 그 맛에 중독된 것 같아요. 커피 특유의 향과 쌉싸름한 맛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샘플 제품을 마시고 배합을 수정해보기를 반복했어요. 락티움 특유의 맛을 잡는 일이 관건이었어요. 미량으로도 다른 맛을 잘 덮는 헤이즐넛 향을 첨가해 커피 맛을 더 살렸습니다.”


3. 건강기능식품은 약이 아니다


마케팅 전략은 약처럼 보이지 않는 데 중점을 뒀다. “약은 아플 때 찾아 먹고 즉효가 있어야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꾸준히 먹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어야 하죠. 슬리빈을 마시자마자 바로 잠이 온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마시면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포장지다. 분말형 건강기능식품보다 커피 믹스 제품을 더 참고했다. “색상, 포장 형태 등 콘셉트를 잡을 때도 커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락티움을 알약이 아닌 커피로 만들 수 있었죠.”


2021년 12월 잠 오는 커피 ‘슬리빈’을 완성했다. 출시를 앞두고 식약처에서 전에 없던 지침이 떨어졌다. “건강기능식품 이름에 부원료를 언급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슬리빈에서 ‘빈’이 커피를 연상시킨다며 쓰지 말라더군요. 이미 상표등록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어떤 말로도 식약처 담당자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란 시간만 흘렀죠. 결국 ‘슬리빈(sleep-in) 수면카페’라는 정식 명칭으로 시장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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