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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사랑하는 말

서비스매너연구소23.04.28

내가 본 말을 잘하는 사람은

늘 곁을 주며, 뒷걸음질 치듯 말했다.

 

자기 말에 겁먹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권위는 없지만 울림은 있고,

말로 무언가를 이룰 생각이 없고,

듣기 위해 말하는 듯 보였다.

 

내 몸에서 귀는 가장 예민하고 변덕을 부린다. 얼굴 옆에 붙어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처럼 바지런을 떠는 일은 없지만, 늘 무언가를 모으고 담느라 바쁘다. 귀는 몸에서 가장 근면한 수신기다. 몸이 잠든 뒤에도 귀는 완전히 잠드는 법이 없다. 귀는 크고 작은 위험요소를 감지하기 위해 언제나 펼쳐져 있다. 귀는 정직하다. 수동적인 듯 보여도 호불호가 분명하고, 열렬히 투덜거리며, 능동적으로 갈망한다. 귀는 참을성이 없다. 불협화음, 큰 소리, 자동차 경적, 잔소리를 싫어한다. 내 귀는 누군가 쇠그릇을 숟가락으로 긁는 소리를 내면 체면 불구하고 그만!”이라고 외치도록 뇌에 명령한다. 귀는 마음껏 손을 부리고(당장 달려와서 귓구멍을 막아줘!), 눈과 입이 합작해 시나 편지를 낭독하게 한 뒤 즐거움을 누릴 줄도 안다. 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가 건네는 다정한 말, 알맞은 말, 진실을 품은 말이다. 어떤 말은 음악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귀는 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귀를 섬기는 자다. 내 말이 상대의 귀로 흘러, 들어가는, 소리란 것을 아는 자다. 그때의 말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충언을 전달하거나 지적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들으려 하는 말이다. 세상엔 그런 말도 있다. 말하면서 동시에 듣는 자세를 취하는 말. 그런 말은 상대의 귀보다 낮은 자세를 취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먼저 듣고, 그쪽을 생각하고, 기다리고, 머뭇거리다 드디어 입을 열어 말을 보내는사람이다. 그것이 소중한 보따리라도 되는 듯, 저쪽으로 건네는 자의 말이다. 이런 말에는 무게와 깊이가 실려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말은 언제든 사라질 준비를 한다. 다른 이의 시선과 표정, 이견(異見)에 자리를 내어줄 여유를 품은 말이기에 강압적이지 않다.

 

언어에 소리를 입히면 말이 되고, 소리를 그림자 삼아 새기면 글이 된다. 말은 글과 달라 태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글이 내려앉는 언어라면 말은 솟구치는 언어다. 글이 기록을 위한 언어라면 말은 소리를 위한 언어다. 시는 예외적으로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글이다. 다와다 요코는 여행하는 말들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글이 곧 외침은 아니다. 그러나 글이 외침과 완전히 떨어져버리면 더 이상 문학이 아니다. 글과 외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글과 외침 사이에 문학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시적이다라고 하는 건 그것이 갓 태어난 말처럼 생동하고, 움직이며, 외침으로써 듣는 이의 귀를 적실 수 있는 힘을 가졌단 뜻일 게다. 시만 시인 게 아니다. 귀를 감화하는 말이나 음악, 에너지는 모두 시와 닮아 있다.

 

시집을 낭독하며

 

몇 해 전 한 서점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작고한 시인의 시집 전권을 낭독하는 추모행사를 연 적이 있다. 가을이고 일요일이었다. 긴 시간을 들여 릴레이로 시를 읽는 일이 걱정되었다. 지루하지 않을까, 끝까지 시를 이어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의심한 것도 사실이다. 서점지기는 공간을 닫아두지 않고 자유로이 열어두었다. 죽은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와 시인들이 오가며, 그가 남기고 간 일곱 권의 시집을 천천히 낭독했다.

 

낭독하기로 한 사람들은 2층에 모여 앉아 자기 차례가 되면 마이크를 쥐고 다섯 편 이상씩 시를 읽었다. 서점 1층에 자리한 사람들은 스피커로 낭독 목소리를 수신해 들으며 각자 일을 보았다. 외출이 필요한 사람은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사거나 읽고,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면서 그렇게 스피커로 시를 들었다. 그날, 시의 힘이 말의 힘이란 걸 깨달았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기대앉아 눈 감고 타인이 발음하는 시, 그 고요한 소리를 듣는 순간이 좋았다. 처음 듣는 모어인 듯,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인 듯, 종소리인 듯, 그 소리는 오랫동안 내 귀가 기다려온 소리 같았다. 말로 세례를 받는 기분, 누군가 소리로 나를 축복하는 자리에 속한 기분이었다.

 

시의 의미? 글쎄, 그건 의미의 일이 아니었다. 어떤 시였는지, 제목이 무엇인지, 몇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인지, 구체적인 메시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손톱으로 의자의 모서리를 긁으며, 창밖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를 바라보며, 잠깐 딴생각을 하며, 1층으로 내려와 다른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들은 이었다. 그건 말이고 소리고 에너지였다. 그날 그곳에 모인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에너지를 송출하고 수신했다. 시가 대단해서라기보다 그날 모인 사람들의 마음, 그들이 품은 기운이 정갈하고 아름다워서였으리라.

 

국회의원들의 말

 

뉴스를 통해 국감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다 보면 웃음이 터진다. 그들의 자세 때문이다. 꼭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다투는 모습 같다. 고함을 치고, 우기고, 욕하고, 비난하며 불필요한 감정을 잔뜩 쏟아낸다. 코미디 같다. 그들은 왜 차례를 지키며 논리를 세워 말하고 듣지 못하는 걸까? 말로 상대를 제압하고 싶은 욕망, 상대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목적을 숨기지 못해서일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말을 끝낸 뒤 상대의 말을 듣고 싶어 귀를 내미는 사람이다. 그가 이해했는지, 수긍할 수 있는지, 다른 의견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좋은 말이란 궁극적으로 대화를 지향한다. 말로 이겨먹으려는 자는 자기 말이 끝난 뒤 상대가 입을 다문 채 저자세로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말로 공격을 퍼부어 상대의 귀를 납작하게 접어버리고 돌아서는 자다. 이때 말은 무기가 된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 해도 그 말로 인해 누군가 크게 상처를 받는다면 좋은 말은 아닐 게다.

 

말이 필요 없지’. 이 말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다. 설명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대상, 빈곤해지는 마음, 쓸쓸해지는 뒷맛을 알기에 정말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비법은 없다. 말하려 하는 그 무언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보다 더 많이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중요한 발언대에 서서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자가 있으면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된다. 모른다는 게 또 다른 위선이 아니라면 그의 표정에 깃든 정직함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할 때는 귀도 일해야 한다

 

징그럽게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물러서고 싶다. 그에게 앞만 있을 것 같아서다. , , 그늘 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말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런 말엔 언제나 속도가 붙는다. 확신으로 가득 차서 말하는 자는 오히려 자기 말에 믿음이 없어 보인다. 말끝마다 소리를 높여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을 보면 가엾다. 내면에 지닌 힘이 얼마나 없으면 말에 강세를 주어 그나마 있는 힘을 다 뺄까? 말로 상대를 공격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갑옷을 사주고 싶다. 그는 항상 겁먹은 상태일 테니까.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 그는 중요한 말을 제외한 다른 얘기만 한다. 옛날이야기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 아마도 그는 자기 현재가 불안할 게다.

 

내가 본 말을 잘하는 사람은 늘 곁을 주며, 뒷걸음질 치듯 말했다. 자기 말에 겁먹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권위는 없지만 울림은 있고, 말로 무언가를 이룰 생각이 없고, 듣기 위해 말하는 듯 보였다. 좋아하는 말 중에 고졸(古拙)하다란 말이 있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뜻이다. 이때 ()’졸렬(拙劣)하다와 같은 한자(옹졸할 졸’)를 쓴다. 옹졸하고 천해 서투르다는 뜻이다. 두 단어를 나란히 두고 들여다보면 옹졸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뛰어난 게 꼭 거대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언제나 고졸함에 가까운 말, 낮은 음성에 실려 소박하고 느리게 오는 말이었다. 콩나물을 다듬는 어른 여자가 시든 콩나물 대가리를 톡톡 따낼 때 뱉는 작은 말같은 것.

 

말할 때는 귀도 일해야 한다. 듣는 사람은 누구도 바보가 아니다. 말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기 쉽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하고 싶은 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 말 잘하기는 글렀으니, 공책 위에 말의 그림자나 가꾸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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