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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일보다 홀대가 더 힘든 외주노동자

서비스매너연구소24.03.22

지난 14일 경기도의 한 11층 아파트 옥상에서 본 박태호(가명·31)씨의 일하는 모습은 위험해 보였다. 그는 이 아파트의 한 가정에 고속 인터넷을 설치하고 있었다. 옥상에 있는 통신 장비에 케이블 끝을 연결한 뒤, 다른 한쪽 끝을 고객 집 창문으로 집어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씨는 통신 대기업 자회사 정규직이자, 11년 차 개통 기사다. 지난달 월급이 수당 등을 포함해 세후 286만원이었다. 그는 나는 대기업 로고 있는 옷을 입고 일하지만 이 회사 직원 대우는 못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웃소싱(outsourcing)은 기업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이나 판매, 유통 등 본업 일부를 다른 기업이나 개인 등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외주(外注)나 하청(下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기업이 연구·개발(R&D), 전략 등을 맡아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작업은 외주로 돌려 성과를 높인 사례도 많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선 외주화가 위험하거나 경쟁이 치열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궂은일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전태일재단은 이런 외주화가 대기업 정규직 12%와 나머지 88%로 갈라진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난도나 위험에 비해 하청을 받는 협력사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등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지나치게 작은 경우가 있어서다. 통신 대기업의 인터넷 개통 기사나 정수기, 비데 등 렌털 가전제품을 관리·판매하는 방문 점검원이 겪는 일이 그중 하나다. 이들은 현장에서 직접 고객에게 대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불만도 해결한다. 본지가 만난 이들은 궂은일을 맡지만 기업에선 이방인처럼 홀대받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전태일재단은 합리적이고 안전한 외주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청 사측과 근로자 대표, 전문가 등이 갈등조정·협력문화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것이다.

 

14일 박씨가 아파트 옥상 끝으로 가서 50m 회색 케이블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릴 때, 바닥이 아득해 보였다. 거센 바람이 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박씨는 경사진 지붕만 있는 낡은 주택에 가거나 비가 오는 날엔 더 조심한다고 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네트워크에 연결될 수 있도록 인터넷을 개통하는 게 그의 주업무다. 특히 오래된 아파트나 원룸 건물 등은 외부 작업이 필수라, 옥상 등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통신 대기업 본사에는 이 일을 하는 정규직은 없다. 협력사나 자회사 등으로 외주화돼 있어서다.

 

박씨는 회사에서 하루에 8곳 안팎의 작업을 배정받는데 이동 시간 등이 있고 현장에서의 변수도 많아 일정이 빠듯한 것이 늘 고민이다. 그는 늦으면 다음 집 고객 항의가 들어오니 늘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그는 매일 오전 8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쯤 퇴근한다. 주말에 설치를 원하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토요일에도 근무한다. 박씨는 나는 통신 장비 설치 기술자이자 고객 심기 살피는 서비스직이고, 새 상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직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영업을 했던 박씨는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했고 초고속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던 시기라 수입도 괜찮았다. 2020년 통신사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돼 지금에 이르렀다. 2년 전 결혼해 가장이 되었지만 아이는 아직 계획이 없다. 300만원에 못 미치는 수입 탓이다.

 

작년에 이 회사는 본사 정규직에게 성과급을 기본급의 360%만큼 줬다. 하지만 자회사 개통 기사는 기본급의 250%가 나왔다. 사측은 초고속 인터넷 등이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회사가 나눌 수 있는 이익이 많이 없는 상황이고, 본사와 자회사의 실적도 다르다고 했다. 박씨는 정규직 기본급이 우리보다 더 높으니 실제 받는 성과급은 정규직의 절반쯤일 것이라며 함께 일해서 내는 성과인데 더 어려운 직원들을 배려해주면 어땠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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