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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와의 잊지 못할 약속

서비스매너연구소21.09.29조회 510

아주 어릴 적의 기억에 의하면 6.25전쟁 이후의 서민들의 삶이란 생존을 위한 기본마져도 잘 갖추어지지 않을 극도로 처참한 상황에 살아가는 비참한 상태의 일상이었답니다.


전쟁발발 3개월 전에 태어났기에 비극적인 삶의 형태를 일상적으로 목격하면서 성장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5명 전 후로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지요.


저희 집에도 식구가 8명 이었는데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2남3여, 방은 5개였지만 장남인 저는 할머니 방에서 함께 살았답니다. 할아버지가 일찍 하늘나라로 가셔서 할머니랑 한 이부자리에 같이 잠들곤 하였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끔 할머니의 젓 가슴을 만지면서 잠들었던 희미한 기억이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잠들기 전에 조막손으로 할머니 젓을 만지면서 “할매 내가커서 돈 벌면 할매 금반지를 사줄께”라고 약속하고 잠들던 날들이 기억나는군요.


할머니와의 약속은 약15년이 지나 이루어졌답니다. 21살에 대학교를 다니다 자진 입대하여 김포공항 옆에 위치하는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배치를 받고 서울로 왔답니다.


지금은 특전사령부가 생겨 전국적으로 6-7개의 공수부대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제1공수특전여단이 유일한 한국의 공수부대였지요.


평생 돈을 벌어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 당시 일등병 월급으로는 금반지 하나 사는데 3년 복무 기간 내내 모아도 모자라는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공수부대는 낙하산을 타는데 위험수당이라 할까 생명수당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3개월에 1만원 정도의 수당을 받았어요. 첫 휴가를 나오기 전 두 번 정도의 수당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반지를 하나 살 수 있었답니다.


첫 휴가 갈 때 소중하게 간직한 금반지를 부산에 계시는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워 드릴 수 있었지요. 할머니와 어릴 적에 함께 잘 때 커서 돈 벌면 금반지 사 드린다고 한 약속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금반지를 끼워드렸던 순간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답니다. 오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손 주 녀석들이 온다기에 청소를 하면서 현관에 무릎을 꿇고 걸레질하다가 문 듯 할머니의 사랑이 그립고 생각나 생전에 할머니와의 아름다운 약속을 되뇌어봅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낼 자격이 저에게 주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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