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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사라지는 산부인과 의사

서비스매너연구소24.04.26

 

서울대병원에 산과(産科) 전임의가 한 명도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2년간 산과 전임의 지원자가 없었던 데다 작년까지 일하던 전임의 2명이 교수 자리를 얻어 이직하면서 공백이 생겼다. 전국을 덮친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서울대까지 닥쳤다.

 

국내에 산부인과 1호 의사는 남성이다.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개원하고 미국에서 제시 허스트 박사가 내한해 산부인과를 창설하고 초대 주임 교수로 취임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골반 모형으로 의대생을 가르쳐 제자들을 길러냈다. 남녀가 유별한 시절이니 산부인과 진찰이나 수술 때 여성 환자들이 부끄러움을 덜 느끼도록 눈을 가려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모성보호에 앞장선 여의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춘원 이광수의 부인으로 잘 알려진 허영숙은 국내 여성 개업의 1호로 전공이 산부인과였다. 192051일 서대문 인근에 산부인과·내과 등을 진료하는 영혜의원을 열었다. 1938년에는 효자동에 해산 전문 병원 허영숙 산원을 개원했다. 당시 월간지 기자였던 시인 노천명이 온돌방 입원실을 갖춘 이 산부인과 탐방기를 썼다. 종합병원으로 성장한 가천대 길병원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여의사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1958년 인천에 자신의 이름을 따 개원한 산부인과에서 출발했다. 환자가 문 밖까지 줄 서는 통에 진료실에 진찰대를 세 개 놓고 바퀴 달린 회전의자에 앉아 발로 밀치며 빠르게 움직여 환자를 진료했다고 한다.

새 생명을 맞는 이 고귀한 일이 의사들 사이에서 기피 전공 1호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뇌성마비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가혹한 판결이라고 성명을 냈다. 한 해 배출되는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100명 남짓. 20년 전의 절반도 안 된다. 그조차 부인과를 택하지, 산과는 기피한다. 4년차 전공의 및 전임의 절반(47%)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 소송 우려(79%)가 가장 컸다.

 

우리나라는 신생아와 산모 사망률이 OECD 평균보다 낮은 의료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산부인과 분쟁 391건의 40%가 분만 관련이다. 그만큼 분만에는 위험이 따른다. 일본·대만 등은 분만 사고를 국가가 배상한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관련 제도를 도입했지만 최대 보상금이 3000만원이어서 유명무실하다. 태어나는 아기는 적고 산모 고령화로 분만 위험도는 높아지는데 분만 수가는 낮고 사고 책임만 엄청 높으니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게 당연하다. “분만 사고 배상 책임에 국가가 저출생 대책의 0.1%만 투입해도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크게 해소될 것이라는 의사들 호소를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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